갤럭시나 아이폰이 널리 퍼진 스마트폰 시대인 지금에는 추억의 브랜드일 뿐이지만, 피처폰이 대세였던 시대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중의 하나가 바로 애니콜이었다. 어디(any)서나 통화(call)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이 브랜드를 볼 때마다 참 잘 만든 브랜드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는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택시를 '콜택시'라 한다. 또 전화 한 통화면 고장 난 물건을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곳을 '콜센터'라고 한다. 이렇듯 영어에서 온 '콜'이라는 단어는 '전화 한통이면 즉각 무엇이 된다'는 의미로 이미 우리 생활 깊숙히 뿌리를 내려 애용되고 있다.
금융에도 이러한 '콜'이 있다. 전화 한 통으로 즉각 돈을 빌려주거나 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콜'이다. 물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으로 즉시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 나름대로 검증된 이들만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름 아닌 은행을 비롯해 신용도가 높은 금융기관들이 그 주인공이다. 즉 금융계에서 '콜'이란 이들 금융기관이 상호간에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을 조절하기 위해 초단기로 자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콜은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모름지기 돈은 돌려야 수익이 생긴다. 특히 이런 일을 업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금융기관이라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매일 금융기관으로 들어오는 예금만큼만 대출이나 투자로 나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금융기관 금고에 돈을 쟁여두기란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금액이 한두푼도 아닌데 말이다. 반면, 보통예금에 돈을 넣어둔 고객이라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돈을 찾으려 할 것이다. 금융기관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은 대출이나 투자에 묶여 있다. 금융기관은 변덕스러운 고객의 예금인출 요구에 갑작스레 돈을 내줘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듯 금융기관끼리는 영업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자금 과부족이 생겨 돈을 빌리거나 빌려줘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어느 한쪽이 궁극적으로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못 믿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서로 믿을 수 있는 금융기관끼리 전화 한 통으로 돈을 빌려주고 빌릴 수 있다. 전화 한 통으로 만사가 해결되니 '콜'이라고 한다. 물론 이 역시 대출과 차입의 일종이다. 따라서 돈의 사용료는 받아야 한다. 이를 '콜금리(call rate)'라고 한다. 아룰러 돈을 빌려주는 것을 콜론(call loan), 돈을 빌리는 것을 콜머니(call money) 라고 구분하며 이러한 콜이 거래되는 곳을 콜시장(call market)이라 한다.
이렇듯 콜은 금융기관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자금 과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보니 기간이 아주 짧다. 만기가 반나절짜리, 1일짜리(정확하게 말하면 1영업일), 그리고 30일 이내의 기간으로 나누어진다. 사실 콜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은 1일짜리다. 이처럼 콜의 만기가 짧기 때문에 콜금리를 초단기금리라고 한다.
콜금리 역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의 수급 상황에 의해 수시로 변동한다. 여기서 예리한 사람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에서 콜금리를 인상했느니 인하했느니 등등의 기사는 무엇인가? 콜금리는 한국은행에서 정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과거 한국은행에서 정하던 콜금리는 가급적 이에 맞추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불과'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를 무시할 금융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각 금융기관은 한국은행이 제시한 콜금리를 염두에 두고 가급적 거기에 맞춰 실제 콜금리가 결정된다.
그런데 콜거래는 단지 금융기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인데 왜 나라 전체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이른바 큰일 하시는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콜금리에 관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경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움직이는 창구가 금융기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통화를 조절할 때 지방 곳곳의 가정 살림에까지 신경 쓸 수는 없다. 그 대신 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을 대상으로 통화를 조절한다. 돈이 움직이는 창구를 조절하면 경제 전반의 통화량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금융기관끼리 단기로 빌리는 자금인 콜의 금리를 조절해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절되는 초단기금리 콜금리는 다시금 단기금리에서 장기금리로 이어지는 파급 경로를 따라 금융시장과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지난 1999년부터 콜금리를 정책금리(기준금리)로 사용해서 통화조절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콜금리가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에서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게 되자, 급기야 2008년 3월 정책금리를 콜금리에서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로 바꾸었다.